자본주의는 막다른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자본주의는 내적 한계를 향해, 그 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미국에서 촉발된 탐욕의 붕괴는 이제 유럽을 거치고 있으며 종국엔 아시아까지 찾아 올 것이
라 생각한다.
탐욕의 높이로 따진다면 아시아도 그리 특별히 낮지 않다고 생각한다.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금융시장에서 규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시장조작을 통해 "돈"을 벌어
들이는 산업만을 가지고 연명해 나가는 국가들은 그 돈의 힘이,거품이 터지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는 아르헨티나가 보여주었으며 앞으로 미국과 유럽이 보여줄 것이다.

아시아에는 일본이 그러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며,한국이 그 뒤를 바짝 뒤쫒고 있다.
거품이 터지는 순간 모든 시장은 얼어버릴 것이고 그 고통 또한 공평히 분배가 될 것 같으나
돈있는 자에겐 기회가 될 것이고 돈 없는 자에겐 있는자에 굴종하며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있는 자에게 거기서 나온 가치를 바치는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의 균등,노동의 가치,부의 재분배와 같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단어에 대한 스스로의 재인식이 필요할 때라 생각한다.
(과연 이러한 말들이 건전한 양식에 기반을 두고 논의 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종말이 가시화되는 지금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경제체제, 삶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될까?

1. 생태주의 운동은 경제권력의 도구들이 '일상문화'를 파괴하는데 대한 자발적 항거에서
   탄생했다.
   이 운동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연'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주의자들의 '자연'도 아니요. 과학적 생태학에서 말하는 자연도 아니다.
   이 자연은 근본적으로, 그 구종와 기능이 직관적으로 이해되기에, 또 그것이 감각과
   동작의 능력이 한껏 만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상응하기에, 또 익숙한 형체 덕분에
   개개인이 그리로 향할 수 있고,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형식을 갖춰 배울 필요가 전혀
   없는 능력의 힘으로(능력에 의해) '자발적으로' 소통할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자연적으로) 보이는 환경이다.

2. 산업경제 성장의 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개발과 소비의 자본주의
   모델의 파괴성, '좀 더'와 '더 낮게' 사이의 관계 균열,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생산의,
   그러니까 생활양식의 목적과 기술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헤졌다.
   생태주의 운동의 '문화적' 요구들은 이리하여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지배적 산업
   주의  및 그 산업주의가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성장이라는 종교와 결별할 시급한 필요성
   에 객관적으로 토대를 두게 되었다.

3. 자동차의 깊은 해악은 그 개념이 애초에 대상으로 삼은 계층으로 볼 때 자동차는
   사치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치란 본질상 민주화되지 않는다. 만약 누구나 사치를
   누릴 수 있다면 더 이상 아무도 거기서 이익을 끌어 낼 수 없다.

4. 대중의 자동차 만능주의는 일상적 실천의 차원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절대적
   승리를 물화하고 있다. 즉, 사람들의 자동차 만능주의는 개개인이 '남들을 누르고'
   남보다 나아져서 자기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의 토대가 되면 그 믿음을
   키워준다.

5. 자동차는 처음으로 계층 간의 차이를 속도,운송수단의 차이로 확대했다.

6. 자동차 주인은 형식상으로는 자기 소유인 차에 대해 소유자 즉 주인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사용자,소비자로서의 관계를 갖게된다. 다시 말해 차는 차 주인에게 오직
   제 3자만이 공급할 수 있는 수 많은 유료 서비스와 산업제품들을 소비하고 사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게 된다.겉으로 보이는 차주인의 자율성은 실상 이렇게 근본적인
   의존을 내포하는 것이다.

7. 역사상 최초로, 인간은 자신의 이동을 위해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에너지원에 종속 될
    것이다.

8. 자본주의는 20년 전부터 막다른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자본주의는 내적한계를 향해,
   그 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으로는 정보공학 혁명,노동과 자본의
   비물질화를 들 수 있고, 그로 인해 노동,자본 그리고 상품의 가치 측정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9.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할수록 일정량의 자본의 가치증식을 좌우하는 생산인구 수는
   점점 더 줄어든다. 이윤량이 감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점점 감소하는
   생산인구의 생산성 증가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야만 할 것이다. 자본 생산적인
   생산인구가 너무 빈약해서 자본이 더 이상 증식할 수 없고 이윤창출이 불가능해지면
   자본주의는 내적한계에 부딪힌다. 
   외적한계도 부딪힌 상황인데 '최소한' 생산성이 올라가는 속도만큼 빠른 증가를 보이게
   될 상품의 총량을 감당할 시장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10. 패자는 점점 더 많아지고 승자는 점점 더 줄어든다. 승자들은 기록적 이윤을 내지만
     그 뒤에는 전반적으로 총 이윤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숨어있다. 기록적 이윤의
     상당부분은 다시 생산에 투자되지 않는다. 생산을 통해 충분한 이윤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 새로운 경제는 자본의 증식 필요성과 돈을 '만들어내고' 돈을 '벌어들여야'한다는
     근심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대신, 생명력과 창조력이 만개하도록,그러니까
     화폐가치로 표현되고 측정되기를 거부하는 진정한 부의 원천이 만개하도록 하려는
     배려에 좌우된다.

12. 자본의 지배가 생산과 소비를 제한하려는 시도에 장애가 되고 있다.

13. 노동자와 자본은 구조적 공모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이쪽과 저쪽 양쪽 모두에게
     결정적 목표는 돈을, 가능한 많은 '돈을 버는것'이다. 양쪽 모두 그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수단이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늘 좀 더 많이',
    '늘 좀 더 빨리' 라는 내제적 구속에 얽매인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강바닥 파헤치기가 한 국가의 밝은 미래가 되고 탐욕덩어리인 아파트가
최고의 자산증식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국민이 있는 곳에서 살면서 앙드레 고르가 살아
생전에 지금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 지 궁금해 진다.

거품의 재생산을 통해 그것을 치적으로 삼고자하는 낮은 수준의 지도자와 자본의 명령에
굴종하는 언론들이 있는 한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은 그 칼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하며 그 피해는 돈 없는 사람이 모두 떠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훗날 국가를 망치고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힘 조차 보태주지 못 한
세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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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3일 기준



@ 비회원



댓글 써 줘서 고마워! :)
  1. wearcom 2010/03/08 2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옵티미스트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더군요. 그책 포스팅 올릴때쯤 다시 뵙지요.

    • 아뵤 2010/03/12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틈틈히 블로그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미식가이신가요?? 저도 좋은 음식,요리에 좀 관심이 있어서요..ㅎㅎ

    • wearcom 2010/03/12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저는 미식가는 아니구요. 잡식가라고 할 수 있죠 ^^ 혹은 대식가라고도 합니다.